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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목사 LA ‘평양 북 콘서트’ 대성황...축사 서평 이어져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평-평-평] 북 콘서트” LA출판기념회

2019-01-31

최재영 목사 LA ‘평양 북 콘서트’ 대성황...축사 서평 이어져

“최재영 목사의 [평-평-평] 북 콘서트” LA출판기념회
우리가 몰랐던 빠르게 변모하는 북한 디지털/음식문화 체험기

Jan 31, 2019

[유정신보=LA]
심흥근 기자 (inchon7080@gmail.com)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평화통일운동가이며 목사인 최재영 박사의 북한여행 저서 3권의 출판 기념북 콘서트가 LA 코리아타운 JJ 호텔에서 지난 금요일 25일 열렸다.

“최재영 목사의 [평-평-평] 북 콘서트” LA출판기념회

우리가 몰랐던 빠르게 변모하는 북한 디지털/음식문화 체험기
1.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2.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
3. 평양냉면


북 콘서트 사회는 한인사회 목회자로서 신망이 두터운 박신화 목사가 전담했다. 미주 언론인 김용현 선생, 정찬열 시인, 이원영 전 미주중앙일보 편집국장, 정연진 OK 코리아 공동대표, 원로 오인동 박사, 김요한 성공회 신부 등 100여명의 동포들이 찾아와 저자의 싸인을 받았다. 특별히 통일학 전문가 김상일 박사를 초청, 김박사의 서평과 저자와의 대담, 그리고 책에서 못다 보여준 이북의 생생한 영상도 공개됐다. 미주지역의 대표적인 민주-진보계 인사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이병도 회장(중원포럼)은 축사에서 자신의 70년대 초 공군 장교시절 (1.21사태 이후 남북간의 갈등이 심화된 시절)의 에피소드 한가지를 소개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도산 안창호선생의 마지막 비서였던 구익균 선생을 당시에 뵙게 되었는데,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정치평등. 경제평등.교육평등.민족평등)를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고, 여기에서 ‘민족평등’문제가 나의 화두가 됐다고 밝혔다.


유병용 박사(워너브라더스 영화사 수석 부사장 역임- 북한태권도선수단을 미국으로 초청 공연, 10차례 방북워너브라더스 부사장시절에 헐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수천편을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자에게 기증, 영화 “반지의 제왕” 제작)는 축사로 마틴 루터 킹 박사의 잘 안 알려진 어린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남북평화도 외세에 의한 외부로부터가 아닌 우리 자신들 스스로 주체적인 각성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우리 자신들의 내면적 성찰과 노력을 다음과같이 당부했다.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 어느 길거리에서 고무풍선 장수가 아이들을 모으려고 풍선을 날렸답니다. 흑인 마틴 루터 킹 어린이도 날아가고 있는 풍선을 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검은 색의 풍선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흑인 소년은, 왜 검은 풍선은 없을까? 검은색 풍선은 하늘로 날아가지 못할까? 색깔이 검기 때문일 거야. 백인들이 나를 차별하는 것도 얼굴이 검기 때문이겠지. 제기랄! 까맣기 때문에 그래서 고무풍선까지도 검은 색깔의 풍선은 아예 없지않는가...ㅠㅠ

어린 마틴 루터 킹은 고무풍선 장수에게 달려가 "아저씨 아무리 풍선을 봐도 검은 풍선은 없는데 검은 풍선은 날아가지 못하나요? 그러자 풍선장수 아저씨는 “얘야 검은색 풍선도 얼마든지 하늘 높이 날아갈 수가 있단다. 왜냐하면, 원리를 봐야하지, ‘겉 외적인 색깔이 아니라, 속 내면의 내용이지’(“It’s not a color; it’s about a content”) 고무풍선은 색깔에 의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고무풍선 속에 든 내용물인 공기에 의해서 하늘로 높이 날아 오르는 거란다”

마찬가지로 피부 색깔이 희든 검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그 사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가 달라진단다” 고무풍선 장수 아저씨의 지혜로운 말을 들은 어린이 마틴 루터 킹은 그 말에 깊은 감화를 받아서 공부하고 노력을 거듭해 흑인인권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목사가 되었지요.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이 나오게 된 흑인어린이 마틴 루터 킹의 깨닮음의 배경인 것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This sentence spoken by the Rev. Martin Luther King Jr. has been quoted countless times as expressing one of America's bedrock values.


김상일 박사 (한신대 교수, 한사상연구소장 역임)는 서평에 앞서 역사적으로 이념적으로 형성된 작금의 한국사회의 관념적인 과도한 편향성을 염려하며 앞으로의 통일시대를 활짝 열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후한 용서를 베푸는 배포도 보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주변을 보면 흔히들 상대를 친일파, 친일분자 하면서 경멸하고 규탄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적극적 친일을 빼고)사실 ‘친일한 조부모가 없었다면 과연 현재 자손들이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겠나’라는 자조섞인 말들이 세간에 돌듯이, 일제때 어쩔수 없이 피동적인 경우에는 용서도있어야하듯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이제는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열린자세로 실질적인 솔직한 남과 북의 그간의 사회상을 비교해 보는것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최재영 목사의 책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는 매우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김상일 박사는 책 내용중에서 ‘고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를 발췌, 서평을 이어갔다.

최목사의 방북기에 수차례 언급한대로 “북은 1952년~59년까지 당시 동유럽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에 3만명의 전쟁고아들을 인솔교사와 함께 보냈으며 전쟁복구 후에는 이들을 고스란히 다시 북으로 복귀시켰다. 이런 모범적인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일 것이다”라는 매우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했다.

(*주). 책 내용의 이해를 돕기위해 아래에 다음과 같이 몇 문단을 소개한다 [편집부]

“북한은 국가의 의무를 다해 전쟁고아까지 해외에 위탁교육을 보낸 후 다시 불러들여 중등학원(고등학교)까지 보내며 보살피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해외입양은 하지 않았으며 전쟁고아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국가와 지도자가 최우선적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국가 정책외에도 고아들을 위해 일선 간부들이 솔선수범하여 고아들을 입양하였고 국가는 더욱 더 시설을 보완하여 고아들을 보살펴왔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식량문제로 국가의 살림이 힘들어졌지만 관료들과 간부들은 고아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국가는 최우선적으로 고아원 시설 유지와 지원을 위해 노력했으며 관료들은 솔선수범하여 고아들을 입양했다. 그리고 전국적인 식량난에도 고아시설에 식량을 가장 먼저 보냈다. 그중 자강도의 어느 간부는 고아들을 열명 넘게 입양하여 키웠다는 등 전국 각지의 관료들의 고아입양 소식이 계속 보도되었다.

이렇게 북은 나라가 어려워도 고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협력하여 키웠으며 특히 어느 관료는 한명의 고아를, 어느 관료는 세명, 다섯명의 고아를, 또 어는 관료는 열명의 고아들을 돌보며 자신들의 집에서 길러주기까지했다. 이런 것이야말로 북한의 고아정책, 아동중시정책이며 이런 정책을 국가, 당, 정부는 물론 최고지도자와 관료, 공무원, 간부들이 앞장서 실천하였던 것이다.

북한의 고아들은 국가가 보장해준 학교 복지시설인 양육원-애육원-초등학원-중등학원의 연장 교육을 받으며 보호받고 있으며 장성한 이후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무런 사회적 차별과 편견없이 사회 곳곳에 진출하여 국가를 위해 큰 활약을 하고 있다.

금년에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만간에 관계가 정상화 되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막을 내리고 60년이상 지속된 경제봉쇄가 풀리면 남과 북의 어린이들에게도 지금보다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을 기대해본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의 내용중 발췌)





축사 직후 축하노래는, 김숙영 교수의 “그리워” 가 불려졌고, 저자와의 대담 직후 율동팀 LA시니어 3인조 “방탄 노년단(BTN)”의 “홀로 아리랑”과 “진도 아리랑”이, 그리고 전체 합창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모두 하나가 되었다.

폐회는 올해 102세 되신 조찬선 목사 (이화여대 교목실장, 해군사관학교 군목실장, 감신대 교수 역임, “일본의 죄악사” 저자)의 축도로 마무리 됐다.






**저자 최재영 박사 인터뷰**

Q)이번에 책 3권을 한꺼번에 출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동안 한국의 통일뉴스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매체와 지역신문사의 종이신문들과 잡지에서 100회가 넘는 제 방북기를 기사화해주었다. 그 영향으로 강연 요청등이 많았으며 몇몇 교회나 종교기관은 물론 진보청년 단체들과 대학교의 북한학과 학생들의 스터디 그룹들이 나의 방북기를 프린트해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파주 출판단지)를  디자인하고 완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가갸날출판사 이상대표가 먼저 나에게 적극적으로 출판제의를 해서 출간이 성사되었다.


Q) 지금까지 북에 관한 다른 책들이 이미 꾸준히 소개되었는데 다른 책들과 차별점이 있다면?

나의 책들은 대부분 내재적 접근방법으로 쓴 방북기 형식이다. 학문적 접근이나 학설 혹은 이론이 아니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것이다. 민족적 감성과 통일의 열정만을 가져서는 어필이 안된다. 아마 이론과 실재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질적인 편견과 왜곡을 넘어서 이북 사회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갔으며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 민족의 앵글로 북녘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다.

Q) 사각지대나 특수 분야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하셨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잊혀지지 않는 사건들은 무엇인가?

전파의 장벽을 허문다는 의미로 최초로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과 페북을 시도해서 성공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황해도 신천군민 학살사건의 객관적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신천학살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피해자중에 한 분인 리옥희 할머니를 만났을때였다. 일명 “복수.하.리라” 라는 이름의 3남매의 어머니인 그분을 통해 당시 미군들의 만행을 직접 생동감있게 접한 가장 큰 기억에 남았다.

Q) 설립한 NK VISION 2020 산하에 여러 단체나 기관이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설립 목적은?

NK VISION 2020은 소셜 무브먼트 그룹이다. 남과 북을 셔틀 왕래하며 동포들에게 민족 화합과 자주 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고자 설립됐다. NK VISION 2020 산하에는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등 4곳의 산하기관을 두어 활발히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2020년이 될 때까지 남과 북과 해외동포 3자가 하나가 되어 코리아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쓰자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Q)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책 4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교회, 사찰, 가톨릭교회, 통일교등 개신교를 넘어서 많은 종교들을 탐방하고 소개했다. 그 의도와 다종교, 초교파 종교를 다 포함하였는데 기독교 개신교 목사로서 그것에 관해 어떤 목적, 종교의 구원관과는 어떻게 연결되나?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명제 앞에는 특정종교가 있을 수 없는거다. 민족 앞에서 각 종교가 손을 잡고 하나 되어 통일과업을 이루는데 힘을 모아야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아직도 소위 북한선교라는 허상을 추구하며 미국식 기독교, 제국주의적 선교에 혈안이되어있으며 민족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반통일세력 되고 있는 것이다.


Q) 최목사의 모험적인 활동중에는 “분단 이후 최초”의 수식어가 따른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지난 광복 70주년을 전후해 <남북의 국립묘지를 찾아 역사화해를 모색하다>라는 주제로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의 국립묘지들을 모두 탐방했다. 화해는 정치적 이슈가 아니고 복음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기도 파주를 방문해 6.25전쟁중에 전사한 북측 인민군묘역을 안장한 적군묘지를 참배했다. 또한 광복 70주년을 전후해 현존하는 이북의 기독교 교회와 가톨릭, 러시아정교회, 불교, 통일교등 타종교들도 심도있게 탐방해서 그 결과를 강연과 집필활동을 통해 객관적으로 널리 알렸다. 또한 어느 기관에서 발표했는데 방북기를 가장 많이 쓴 사람으로 기록되었으며 봉수교회, 칠골교회, 평양제1교회, 장충성당, 정백교회, 가정교회등 분단이후 현존하는 이북교회에서 가장 많이 설교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Q) 이번에 출간된 책 3권외에도 이미 출간된 책들이 또 여러 권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
 
1)<북녘의 교회를 가다>:
현존하는 이북의 기독교 교회와 기관들을 탐방한 결과를 정리한 책     
2)<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
현존하는 이북의 가톨릭, 러시아정교회, 불교, 통일교등을 탐방한 결과를 정리한 책
3)<손원태박사 회고록: 내가 만난 김성주, 내가 만난 김일성>
청소년시절부터 김일성 주석과 막역한 사이였던 재미동포 손원태 병리학박사가 60년전 청소년시절의 김성주에 관한 증언과 60년이 지난 후 다시 상봉해서  김일성주석이 서거할때까지 겪은 이야기들을 회상하며 집필한 회고록이다. 우리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차원에서 발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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