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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상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모델은 사실 장면내각에서

2017-11-14

한국의 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상
-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모델은 사실 장면내각에서
- 스탈린이 주도한 소비에트 경제개발 모델이 원조

2017년 11월 14일

[유정신보=LA] 심흥근 기자 (inchon7080@gmail.com)

K라는 페친분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60년대 케네디 정부가 사회주의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저서 못 살던 남한에 대해 대대적인 개발자금을 대었고 이러한 5개년 계획안 마저도 전적으로 미국이 수립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



케네디는 61년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후에는 아예 한국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는데 고심했다. 하지만 북한은 가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남한은 점점 뒤처지고 있어 케네디는 마지못해 한국에 계속 원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이념경쟁에서의 우위를 지켜내기 위해 남한에 대한 자금지원은 아시다시피 실제로 이루어졌다.


사진: 1961년 3월 장면 총리(왼쪽)가 이한림 제1군사령관(중장)과 함께 원주 국토건설사업 시공식장을 둘러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사실 장면 정부 때 이미 플랜이 거의 완성 되어 있었다. 관료권위주의적 박정희 정권의 엘리트들은 단지 잘 만들어 진 5개년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플랜에 한가지 껴 넣은 것은 박정희가 일제의 장교로 만주에 가 있으면서 배운 일본군의 점령지 개발과 관리 방식이었다. 군의 엄격한 상하 조직 명령 체제 에 입각 재빠르게 길을 내고 필요한 건물을 짓는 그 속도가 매우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론을 인용한 것이다.



또한 그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플랜은 원래 소비에트가 원조이다. 당시 러시아는 공업과 철강 산업 중심으로 발전된 게르만 민족 독일의 막강한 도전을 어떻게 해서든지 물리쳐야 생존이 가능한 절체절명의 기로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슬라브 민족과 게르만 민족은 서로 철천지 원수이다.

따라서 소비에트는 급진적 경제개발 모델을 세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자본을 국가가 독점하여 농공상 3개 범주로 나누고 각 산업별 ‘잉여’가치를 어느 한곳에 몰아 재원을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다.



5개년 경제개발 플랜은 레닌의 경제이론을 수학한 스탈린 정권이 주도 성공한 모델이다. 당시 소비에트는 공업에 우선적으로 집중 투자하여 성공적인 공산업중심 개발국으로 이륙했다. 2차대전에서 결국 소비에트는 나찌 독일을 물리쳐 승리했다.

이러한 소비에트식 개발모델을 장면 정부 엘리트들이 차용 당시 한국의 상황에 맞게 기획 한 것을 박정희가 한번 더 자기의 만주군 경험을 첨부 업데이트 한 것이 바로 6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모델인 것이다.





관련문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1962년부터 1996년까지 1~7차에 걸쳐 수립된 경제개발5개년 계획

1.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
2.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1)
3.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6)
4.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7-1981)
5. 제5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84-1986)
6. 제6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1987-1991)
7. 제7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1992-1996)

https://iicc.stepi.re.kr/kor/0401/view/id/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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