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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남북 모두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설명절의 유래와 풍습

2018-02-15

[통일소식]

설날은 남북 모두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설명절의 유래와 풍습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의 명절 중의 하나로 음력 1월 1일이다. 설이라고도 한다. 설날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 세배를 하는 것이 고유의 풍습이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며, 이 기간 동안 행하여지는 여러 풍습이 전해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 날을 즐겼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1년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 안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며 나쁜 병을 물리치길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85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였고, 1989년부터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로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였고, 2003년부터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월 1일부터 음력 1월 3일까지)로 하고 있다.

설날은 남북 모두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설명절에 관한 남과북의 해설 자료들을 발췌 해 소개한다 [편집부]



<설명절의 유래와 풍습>

발췌: [우리민족끼리]
주체107(2018)년 2월 16일

설이란 새해 첫 명절을 이르는 고유한 조선말로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민속명절이다.

우리 나라에서 설명절은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국가시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후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강가에 모여 돌팔매놀이, 눈끼얹기와 같은 편싸움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설명절맞이는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로 이어지면서 전통적인 풍습으로 더욱 고착되여 큰 규모로 진행되였다. 국가적으로 1896년부터 양력이 사용되였으나 우리 인민들은 양력설보다 음력설을 기본으로 설명절을 쇠였다.

섣달그믐날부터 사람들은 집안팎을 깨끗이 정리, 청소하고 소나무, 학 등 십장생그림을 그려 벽장이나 병풍에 붙여서 명절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설옷(설빔, 세장)과 설음식을 준비하였다. 집안팎을 가셔내는것은 묵은 먼지와 때를 시원스럽게 털어버리고 참신한 기분과 새 결심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농사가 주업이였던 조상들은 섣달그믐날에 새해에 풍년이 들기를 념원하여 일부 도구들을 새로 장만하기도 하였다. 곳에 따라서는 섣달그믐날에 《묵은세배》라고 하며 웃어른들을 찾아가 마지막인사를 하였으며 친구들사이의 정을 두터이하기도 하였다.

설맞이행사는 새해 정월초하루날 아침부터 진행되였다. 설맞이행사로는 차례와 세배, 설음식대접, 민속놀이 등이 있었다.

차례는 설날 새벽에 먼저 돌아간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였다.

설날 이른아침에는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하였다. 우선 집안의 웃사람순서로 차례차례 큰절로 세배를 하였으며 다음에는 마을의 웃어른들, 친척집의 웃사람들, 스승들에게 세배를 하였다. 세배풍습은 웃사람을 존경하고 례의를 귀중히 여겨온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을 보여주는 일면으로서 오늘까지도 적극 장려되고있다.

설맞이행사는 다음으로 설음식을 잘 차리고 친척들이 한곳에 모여 먹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것이였다. 설날음식은 세찬이라고 하였는데 떡국, 찰떡, 설기떡, 절편 등과 여러가지 지짐류, 당과류,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과실, 술 등을 마련하였다. 특히 떡국은 설음식으로서 빠져서는 안되는것이였다. 설날아침의 식사는 대체로 부모들이 사는 집에 모여서 가족끼리 즐겁게 하였다.

설명절을 특별히 장식하고 즐겁게 한것은 민속놀이였다. 설날의 놀이로는 윷놀이와 장기놀이, 어린이들의 연띄우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놀이는 우리 인민이 예로부터 즐겨온것으로서 정서적이면서도 체력단련에 도움을 주었다.

설명절은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이 년중 가장 즐겨맞는 민속명절의 하나로서 해를 이어 계승되여왔다.

제기차기, 줄넘기, 팽이치기, 연띄우기, 윷놀이, 장기 등 각종 민속놀이들이 더욱 이채롭게 진행되고 남녀로소가 조선바지저고리, 조선치마저고리, 색동저고리를 떨쳐입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는 흥겨운 모습들은 설명절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준다. (중략)



한국의 설날
발췌: [위키백과] 공식이름 설날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의 명절 중의 하나로 음력 1월 1일이다. 설이라고도 한다. 설날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 세배를 하는 것이 고유의 풍습이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며, 이 기간 동안 행하여지는 여러 풍습이 전해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 날을 즐겼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1년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 안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며 나쁜 병을 물리치길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설날은 남북 모두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4년부터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 공휴일이 되었다.



명칭
설날은 해(年)의 한 간지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는 날로,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등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력설인 1월 1일을 신정(新正), 본래의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와레키(和曆)를 양력으로 바꿀 때 음력설을 구정(旧正)이라고 부르면서 만든 말이다.

한국의 설날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설에 내주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의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들이 음력설에 세배를 다니거나 설빔을 차려입은 경우에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고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는 등 온갖 탄압과 박해를 가하였으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을 없애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40여년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특히,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사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하였고, 양력설에 차례를 지낼 것을 권장하여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그러나, 대부분 가정에서는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러한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공휴일 지정
대한민국에서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였고, 1989년부터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로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였고, 2003년부터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월 1일부터 음력 1월 3일까지)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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