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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에서 쓰는 유목민의 편지”

커피와 누룽지를 이승에서 즐기셨던 고 배정웅 시인

2021-01-29

‘커피와 누룽지’ 소고(溯考)

“이방에서 쓰는 유목민의 편지”

[유정신보=LA] 편집부

커피와 누룽지를 이승에서 매일같이 즐기셨던
고 배정웅 시인(귀천 歸天 July 06, 2016)

고 배정웅 시인 (1941년 10월 01일 대한민국 부산 출생-2016년 7월 06일  미국 LA라성 별세)
미주한인문단의 원로; 민족시인문학선양회 이사장/재미시인협회장을 역임.


Chung Ung Bae (Poet)
Rose Hills Memorial Park
@ Lot: 608 (311-310)

글 소개:
[배정웅 편지수필]

“이방에서 쓰는 유목민의 편지”

S형,
남에게 편지를 잘 쓰지 않는 편에 속하는 내가 형에게 막상 몇 자 쓰려고 하니 하얀 백지의 공포, 망설임 같은 것이 느껴지는군요.

얼마 전 한 산악인이 산을 오르는 등정은 집으로 돌아와야 종국에 완성된다고 말한 것을 신문 제목으로만 얼핏 읽었습니다. 집을 나서서 천신만고의 어려움과 위험 끝에 자연을 정복하고 집의 품에 안기는 과정, 산과 집까지를 하나로 묶는 어떤 사유 같은 것이 문득 느껴지더군요.

고국을 떠나 서른 해도 넘게 꼭 등정 행위에 비유할 만한 삶을 나도 살아왔다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요?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살아온 나에게는 집이라는 언어 자체도 아득해서 눈물이 쏟아지려 하고요.

흔히들 유목민이라고 하더군요. 단지 먹이는 짐승과 천막과 추위를 녹일 모닥불과 찾아 헤매는 초지가 없을 뿐, 방황하는 삶의 열정과 여정은 그들 유목민과 별반 다를 바 없지요. 지금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땅도 내게는 날이 밝으면 떠나야 하는 흐릿한 알전구 빛의 그 옛날 여인숙이나 다름없지요. 하기야 어떤 서양 시인은 죽은 자가 망각의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침묵의 무덤까지도 인간의 여인숙이라고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이승처럼 타는 촛불과 붉은 포도주와 춤이 없지만 말입니다.

S형, 유대인 음악가인 아널드 쇤베르크란 사람은 이민자는 고국이라는 영감의 원천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순간부터 예술이 메마르게 된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자신의 고국, 자기가 태어난 안태 고향이라는 것은 영감 그 자체가 아닙니까. 아니 영감을 공급하는 발전소 같은 것이기도 하지요. 영감이 메말라서야 시고 문학이고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한국어라는 내 모국어 안에서도 이방인이고 유목민이고 그리고 집시의 존재가 되어 버렸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들뢰즈는 그래서 이민자는 자신의 방언 자신의 사막을 찾아야 하고 구멍 파는 개가 되던지 굴을 파는 쥐같이 되라고 권고한 것 같아요. 모르긴 해도 나름대로의 자기 세계, 자기만의 언어, 자기만의 방언 같은 것을 구축하라는 얘기이겠지요. 시를 쓰는 내게는 그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할까요.

1960년대에 형과 같이 베트남 전장, 그 극한상황 속에 있을 때는 살아남기만 하면 시며 문학까지도 내 뜻대로 되리라고 자만했는데 보이지 않는 운명은 나를 조난당한 산사람 같은 처지로 만든 것 같아요.
내가 끄적거린 시들은, 사막을 혼자 걷다가 너무 외로워서 뒤돌아 모래 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바라보았다는 어느 시인의 마음 같은 것으로 쓴 것이라고 구구하게 말해도 될는지요.

그 옛날 양주동 선생께서 형을 두고 한국의 바이런이라고 했지요. 내게는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그럼 이만.

로스앤젤레스 한 모퉁이에서, 배정웅 드림

*

미주지역 해외문인 배정웅 시인은 김춘수 시인의 후학으로 70년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남미를 거쳐 북미 이민 후, 시 전문지 ‘미주시학’의 발행인으로 해외문학대상(해외문학사), 해외한국문학상(한국문인협회), 민토해외문학상 등을 수상.

대표작으로는 시집 ‘길어올린 바람’ ‘강과 바람과 산’ ‘바람아 바람아’ ‘새들은 페루에서 울지 않았다’ ‘반도네온이 한참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 시집 '국경 간이역에서' (2016).등이 있다.

Chung Woong Bae (Poet): Poet Mr. Bae was born in Busan, Republic of Korea Oct 01, 1941. He began his literary career as a poet in 1968, as publishing a collection of poems titled ‘15miles Northwest of Saigon’, and receiving a recommendation from Hyundae Literature. His well known other collections of poetry are; The wind Drawn from the Well (1977). ‘Birds Didn’t Sing in Peru (1999). ‘Bandoneon Cried for a Long Time (2007). Mr. Bae received the 10th Overseas Korean Literature Award and served publisher of ‘Mijushihak’. Poet Mr. Bae passed away in Los Angeles California on July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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