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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辭) 쓰기 - 이원택 수필가

생의 유한함을 영원한 기억으로

2013-03-16

생의 유한함을 영원한 기억으로 
<조사(弔辭) 쓰기>

주). 지난 2013년 3월16일 ‘퍼시픽 팜 리조트 호텔’에서 열린 미주 서울의대 동문 정기 모임 문학 세미나에서 이원택 수필가가 발표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모임에는 미주 여러 주에서 약50여명이 참석하였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배정웅 시인의 축사 겸 “문인의 역할”에 대한 강의도 이어졌습니다.
(기록, 사진: 심흥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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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辭) 쓰기
- 생의 유한함을 영원한 기억으로


이원택 (정신과 전문의/재미 수필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다. 일 년에 서너 명씩 친지들이 세상을 떠난다. 그 숫자는 앞으로 더 가속 될 것이며 언젠가는 나도 그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동창회보의 많은 지면이 조사로 채워지고 있다. 하나같이 심금을 울리는 명문들이다. 그들이 언제 조사 쓰는 법을 배웠겠는가?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심정을 고인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 생각하고 썼을 것이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 훌륭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야 비로써 고인의 사랑을 느끼고 고인의 고귀함을 깨닫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이기에 우리는 더욱더 고인의 죽음을 아쉬워한다. 고인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애도의 정이 깊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조사는 고인과 친한 사람이 쓸수록 심금을 울려줄 것이다.

사람이 백세를 살아도 한 순간이고 범죄자라 해도 인간적인 면이 있으며 일생을 무위도식한 사람도 무언가 남겨주고 간다. 큰 눈으로 보면 모두가 상대적인 개념이고 심판은 우리 몫이 아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상쇄하고 모든 것을 덮어준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죽음은 유한한 ‘인생’이 끝나고 영원한 ‘인간’이 태어나는 거룩한 시간이다.

요즈음 장례식에 가보면 사람들이 평상복을 입고 나와 허심탄회하게 고인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을 보는데, 이는 장례식을 울고 짜는 비극에서 웃고 떠드는 희극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한다. 종교적인 장의 의식에서도 근엄한 설교보다 재치 있는 농담을 삽입해서 분위기를 가볍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장례식을 오스카 시상식처럼 축제로 몰고 가고 있다. 슬픔을 극복해 보려는 반작용으로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죽음을 찬미하고 축복해주자는 것이다. 장례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조사를 쓸 때도 너무 형식에 구애 받지 말고 그냥 평소에 말하는 식으로 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친근감과 편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너무 적나라한 표현은 삼가야 한다. 미국에서 친지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Shit!” 이란다. 한국에 있는 한 친구는 내가 전화로 친한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고 했더니 “x발! 그거 어떡하냐?”란 말이 튀어 나왔다. 이것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비탄 반응의 실체는 분노다, 박탈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장례라는 의식을 통해서-. 한국에서는 초상집에 가면 의례 소주를 마시면서 밤샘을 한다. 분노를 삭이기 위해-. 상여가 나갈 때는 구성진 소리로 ‘북망산천 찾아가는......’ 상두 가를 부르고 달고질을 할 때는 고운 정 미운 정을 몽땅 다져버린다. 그리고 못다 푼 한을 풀어주는 진혼제를 지낸다.

우리가 의식을 치르는 이유는 원초적인 감정을 순화시키고 불안감을 달래주는데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어떤 규범에 따라야 한다. 조사를 쓸 때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격식이 있다. 선조들은 만장이라고 해서 천에 시를 쓴 것을 깃발을 만들어서 장의 행렬을 뒤따르게 했다. 한자 문화가 쇠퇴하면서, 장의 문화가 서민화되면서 어려운 만장 대신 조사가 등장했으며 조사도 점점 쉽게 쓰는 방향으로 진화가 되고 있다.

조사를 쓰는 이유는 고인에 대한 빚을 갚으려 함이며 조사를 쓰는 목적은 고인을 떠내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보려 함이다. 이때 고인에 대한 추억과 고인의 영생을 축수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조사는 죽은 사람을 위해(for) 쓴다지만 결국은 살아있는 사람을 향하여(to) 쓰는 글이다. 내용을 전달하려면 형식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이 알기 쉽게 정리해 주어야 한다.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첫째, 고인의 입장에서 그 사람이 과연 조사를 읽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고 둘째, 조사를 쓰는 사람이 고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되새겨 보는 일이다. 즉 쓰는 사람의 목소리로 죽은 사람의 생각을 말해 보려는 것이다. 고인의 생각을 알아보려면 그의 인생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우선 고인의 출생과 성장과정, 가족과 친지들, 교육이나 직업, 살아온 장소와 주변 환경, 취미와 관심사, 특별한 업적 등을 알아야 하고, 이것들을 잘 정리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그 중에서 중요한 사항 한 두 가지를 예를 들면서 두드러지게 표현 할 일이다. 어떤 이는 심오한 문장을 선호하고 어떤 이는 가벼운 문장을 선호하나 제일 좋은 것은 장엄한 글과 경쾌한 글을 번갈아 써서 독자로 하여금 엄숙한 분위기에서나마 고인의 생애가 알차고 재미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조사도 글이기 때문에 모든 글의 기본인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라야 조리 있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대체로 고인의 약력, 고인의 가족, 대인관계, 사회생활을 간단히 기술하고 특수한 업적이나 재미있는 일화들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킨 후 그가 좋아했던 시, 노래, 성경구절 등을 인용해서 글을 마무리 짓는 방식이 제일 무난하다. 즉 그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즐겼으며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갔는가를 말해보는 것이다.

다음에는 글 쓴 사람과 고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고인과 함께 한 삶의 단편을 피력하면서 될 수 있으면 재미난 일화나 감동적인 사건을 예를 들 일이다. 이때 고인의 삶의 지혜를 발굴해서 그것들이 어떻게 글쓴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처럼 재미있고 현명한 사람을 잃게 되어 애석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고 써야 한다.

고인의 취향에 맞는 조사를 쓰려면 평소에 고인이 한 언행에서 감을 잡아야 하는데 어떤 이는 자기 조사나 묘비명을 죽기 전에 써놓기도 한다. 동창회보에 나온 최재천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 94세까지 산 ‘죠지 버나드 쇼’는 “오래 살더니 내 이런 꼴 당할 줄 알았다”고 했고, 일본의 선승 모리야 센양은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술통바닥이 샐지도 모르니까” 라는 시를 적어 놓았고,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써달라고 했단다. 유신 체제 때 부통령으로 통했던 차지철씨의 묘비에는 “차지철 박사지 묘” 라고만 쓰여 있다. 학구열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고인에 대한 자료가 더 필요하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한테 물어 볼 수도 있는데 이때 조사의 어조(tone)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의하면 나중에 유족으로부터 원망 받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어떤 친구는 장례식에 갔다가 몰상식한 조사를 듣고 와서 자기 장례식에는 절대로 조사를 하지 말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조사는 쉽고도 어려운 글이다. 너무 간결해도 안 되고 너무 장황해도 안 된다. 너무 무거워도 안 되고 너무 가벼워도 안 된다. 산 사람 위주로 써도 안 되고 죽은 사람 위주로 써도 안 된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비결이 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쓰면 된다.

이원택 (서울대학교 의대 71년 졸, 정신과 전문의)
병원주소: Memorial Counseling Associates/Memorial Psychiatric Health services:
4525 Atherton Street, Long Beach, CA. 90815
전화: (562) 961-0155 Office
www.mcapsy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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