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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예수: 위대한 이성의 스승

2017-11-27

[오피니언]

내가 아는 예수: 위대한 이성의 스승
 
필명 : auramon  (미국 남가주 모 명문대 생물학자)
 
종교의 교리들 중 특히 기독교 교리.도그마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목적론, 종말론 등)들은 객관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폐쇄체계이다. 기독교 교리들은 주관과 객관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던 무지한 고대인들이 그들의 wishful thoughts 를 바탕으로 임의로 만들어낸 원시적.미신적 신화적 세계관이 체계화.도그마화된 신앙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란 이런 원시적 교리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믿음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여기고 남들도 모두 자신들과 같은 믿음을 갖도록 선교 세뇌해야 한다고 믿는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배타적.독선적이며 미신적.도착적인 아집이다.



많은 경우 믿음의 선택은 그것이 허위.허구임을 알면서도 억지로 그 교리.도그마를 믿는 체 해야하는 자기기만, 이중성, 위선 등을 수반한다. 한편,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 하기 위해 객관적 진실을 외면하고 과학과 이성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폄하, 부인하며 스스로 지적 퇴보의 길을 택하게 한다. 이성적 세계관, 과학, 객관적 사실들은 기독교의 믿음의 허구와 거짓됨을 증명하기 때문에 비이성.반이성.몽매주의를 선호하게 만든다.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복음주의, 한국의 기독교는 "믿ㅤㅅㅠㅂ니까?" "믿ㅤㅅㅠㅂ니다" 외에는 아무런 생산적인 communication 이 가능하지 않은, 이성적 대화의 블랙홀이다. 인간의 자유롭고 이성적인 지적 활동.사고를 "교만"이라고 정죄하고, 죄악시.금기시.적대시하는 반이성.맹신주의이다. 남들과의 타협과 평화 공존을 거부하는 편집광적이고 독선적인 유대교 전통에, 임의로 유대야훼의 아들로 신격화.신화화한 예수를 감동.멜로드라마화 하고, 기복.주술적.샤마니즘적으로 접목한, 유치천박한 대중인기종교미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버젼으로 볼 수 있다. 유대인들도 더 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유대교 경전인 토라가 기독교의 주요경전으로 맹신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처럼 예수는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고,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가 비이성적 사고방식과 올바른 깨달음의 결여에서 오는 불합리.부조리함 때문이라고 보았다. 예수의 사상은 철저히 휴머니즘적이며, 개인적인 깨달음과 자유함을 얻는 것(즉, 구원)을 지향하였을 뿐, 절대로 집단화.조직화.비지니스화된 맹신종교를 염두에 두거나 목표로 삼지 않았다. 예수는 단 한번도 제도화된 종교를 지지한 바 없다. 예수는 권위에의 맹종, 위선적 형식주의, 인간의 억압.착취, 그리고 비인간화.인간소외, 외형적 실적위주적 인간평가, 맹목적 열심 등을 가장 증오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객관적으로, (기독교적 선입견 없이) 고찰해보면 천재가 아니라도 이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현대적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간추려본다.

나는 군중의 리더가 아니다. 나는 권세.명예.부에도, 조직화된 정치.사회 운동.활동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은 인간과 삶의 문제의 핵심적.본질적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윗의 후손 따위의 너희가 원하는 정치.경제.물질적 메시야, 또는 신비적 구원자도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너희 중 오직 (극)소수만이 나의 사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아라.
먼저, 헛된 것들에 미쳐서 열광적으로 살지 말고 온전한 정신으로 사람답게 이성적으로 살아라.
염려하며 살지 말라. 염려함 자체가 무슨 도움을 주느냐.
남을 미워하거나 업신여기지 마라. 적이나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너희는 혼자서 살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해를 주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나 마찬가지이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을 살펴보고 반성하고 고쳐라. 남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신을 고치는 것이 옳다.
여자를 천대.박대하지 말아라. 그들은 너희 어머니 누이이다. 아무 때나 이혼증서를 써주고 함부로 내치지 말아라.
어린아이도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그들의 선입견과 위선이 없는 깨끗함.순수함,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을 오히려 본받아라.
물질에 집착하지 마라. (그 때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은 돈과 물질에 광적으로 집착함.)
원하는 물질을 다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물질이 다 무슨 소용이냐 이 바보들아.
돼지처럼 제욕심만 채우지 말고 이웃도 (삶의 환경도) 좀 챙겨라.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서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오히려 행복을 가져다 준다.
가난을 두려워하거나 멸시하지 말라. 가난한 것은 오히려 복일 수가 있다.
천국은 하늘 위도 물 속도 아니고 바로 너희 마음 속에 있다. 천국은 이성적.합리적 생각과 옳은 깨달음과 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삶에 있다.

천국은 먼저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깨달음으로 나타나며, 사회 속에서 점진적으로 자라난다. 천국은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또 자라나서 공중의 새도 깃들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 그늘에서 쉬게 하는 성숙한 이성과 정신 속에 있다. 좁은 교리의 화분 속에 분재된 나무와 같이 종교를 맹신하는 자들이 갖는 왜소하고 기형적인 사고방식 속에 무슨 합리적 깨달음과 관용과 천국이 깃들겠느냐.

이기심, 음란, 증오, 위선, 교만 등의 문명 이전의 생물적 본능.감정을 따라 살지 말고, 이성적, 아가페적 (나를 상대화 객관화 하는 능력)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어라. 감정.본능.맹신을 따르는 삶의 결과는 상처 (trauma)와 파멸이요, 이성을 따르는 삶은 자유와 천국이다.

목마르지 않는 샘물은 이성적 깨달음으로 얻는 것이지 (한번 깨달아 알게된 사실.진리는 영구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변덕스럽고 일시적인 감동 (가령 부흥회, 감성을 부추기는 설교, 열광주의나, 단기선교.충성봉사 등의 행동주의로 부터 오는), 종교적 도취, 세속적 본능적.감정적.육체적 쾌락추구를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후자의 것들은 도로 목마르게 되는 바닷물이나 마약 처럼 자꾸만 마셔야 된다.

비본질적, 지엽적, 형식적인 것, 겉으로 드러난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 속의 상태와 생각과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 행위의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 마음 속의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 한편, 거짓된 말보다는 의도하는 바를 통해 진심이 드러난다.

남의 칭찬을 듣기 위해 선행을 하지마라. 선행과 구제의 본질은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자는 데 있다. 그러나 과시적 구제.선행은 자신을 버리기는 커녕 자기집착의 극대화를 가져다 준다.



봉사나 구제.행동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배우고 깨닫는 것이다. 봉사.구제.선행 자체는 궁극목표가 아니다. 세상을 경제적.정치적으로 개선하고 가난을 퇴치하고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으면 내가 진작 돌로 떡을 만들고 대중을 조직화 하고 권력을 얻고 능력을 발휘해서 세상을 바꾸려 했을 것이 아니냐, 이 바보들아. 가난한 자는 언제나 너희와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진짜 목표는 너희 마음 속에 천국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만일 구제와 경제적 생산.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내가 실적위주의 사역을 했어야 했고, 과부의 헌금액수라던가 향유를 허비한 마리아의 어리석음을 문제삼아야 하지 않았겠느냐. 성전보다 제물을 중시하고, 형식주의와 대중선동과 권력자.부자들과의 결탁을 중시해야 하지 않았겠냐.

나는 외형적 개혁.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들의 가치관과 의식구조.사고방식을 바꿔놓고자 한다.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기 때문이다.

기도건, 금식이건, 구제이건, 마음에 없는 것을 형식적으로, 억지로 하지 말라. 기도.금식.구제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지 마라. 그것이 돈.물질이건, 명예, 그럴듯한 직업 (성직)이건,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권세.권위이건, 대중에게 종교의 이름.구실.미끼로 신을 팔아먹으며 배를 채워서는 안된다.

광적인 믿음을 삼가하라. 종교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 바보들아. 종교를 위한 종교는 있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신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신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종교와 신의 주인이다. 인간이 인간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임을 알라. 소위 신본주의는 다름 아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신 노릇을 해 보겠다는 위장된 사기극이다.

죄는 무슨눔의 죄냐. 사람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사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남의 죄를 사해주면 네 죄도 사해진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 일흔 번의 일곱번, 무한히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 무한히 용서하는 신 앞에 무슨 죄가 있느냐 ? 죄는 문명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죄라는 것은 결국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죄라는 올가미로 결박하여 종교.신 (결국은 종교권력)의 종노릇을 하게 하는 고대 유대교적 통치이념이 아니냐, 이 위선자 사기꾼들아.

믿음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기도를 할려면 골방에 가서 혼자서 조용히 하라. 사람들, 회중들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많은 중언부언과 허튼소리를 늘어놓는 형식적.집단적.외형적.위선적.외식적 종교행위를 하지 말고, 특정 개인의 주관적 착각.환상을 일반화.교리화.도그마화 해서 남들에게, 모든 인간들에게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똑같은 믿음을 갖도록 강요하는 지적인 폭력을 제도화 하고 획일적.전체주의적.조직적.제도적.사업적.상업적 종교를 만드는 범죄행위를 삼가하라. 그냥 해와 비를 선인.악인, 내편.네편 할 것 없이 만인에게 고루 내려주시고 무한히 용서하여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 보편 신, 마음 속에 순수히 느껴지고 미더운 아빠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믿고 온전.건전하고 이성적으로 살아라. 그리하여 늘 불안해 하고 안달하며 교회 출석, 종교행위를 안하면 큰일이나 나는 것 처럼 고정관념과 율법주의에 빠져서, 밤낮 없이 기도하기, 새벽기도하기, 온갖 명목의 집회하기, 켸켸묵고 시대에 뒤떨어진 경전따위에 매달리고 읽기, 이성과 과학을 거부하기, 종교적 봉사, 헌신, 충성 (누구에게?)하며 행위로든 믿음으로든 무슨 복을 받고 화를 면해보려고 애쓰지 말라. 미신적 기복과 열광주의와 행동주의에 빠지지 말라. 이런 것들은 존재에 대한 신뢰가 결여된, 비이성적 정신불안증세의 증거일 뿐이다. 그냥 존재와 (혹은 하나님과) 화해하고 존재의 법칙을 (혹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나를 절대화 하지 말고 내려놓고 의연한 자세로 살아라. 들에 핀 백합화, 공중의 새를 봐라. 새벽기도.금식.수고.염려.선교.구제.봉사.집회.부흥회.중보기도.통성기도.회개 등등 아무 것도 안하고도 잘 살지 않느냐 이 바보들아.

너희가 주장하는 바 전지.전능하고 완전히 선한 초월자가 있다면, 너희가 빌기도 전에 너희가 필요로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서 마땅히 공급해 주지 않겠느냐. 믿고 신뢰를 할려거든 제대로 해라 이 위선자들아. 늘 입술을 움직여 일일이 언표해서 중언부언 기도해야만 하는 그 정신상태는 이미 너희의 믿음.신뢰가 가짜임을 말해준다, 이 타종교인들 만도 못한 자들아.

너희도 존재세계에 속하므로, 다른 존재들과 화해하고 모든 존재와 평화공존하라. 자신을 다른 존재들로 부터 분리시켜서 인간과 존재. 인간과 인간을 적대적으로 만들어 놓는, 도무지 평화공존과 상호동화가 불가능한 악질 골통 유대교적 세계관.사고방식에서 탈피하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겠다고 하면 믿지 말아라. 도그마에 젖은 반이성적인 자들에게서 이성과 진리를 기대하지 마라. 마음에 이성의 빛이 없는 자들은 어두움 그 자체이다. 그들에게 인도 되면 같이 구덩이에 빠질 뿐이다.

그리고, 제발 켸켸묵고 완전히 잘못된 도그마, 전통, 권위, 시대에 맞지도 않는 과거지식.이론.신화.미신적 교리들을 현대사회에다가 기를 쓰며 억지로 적용시켜 보려는 돈키호테적 희극들을 연출하지 말아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지 않느냐? 생배 조각을 헌 옷에 기우지 않지 않느냐 이 바보들아. 축자영감이니 삼위일체니 신유니 중보기도니 번영.기복신앙이니, 창조과학이 다 뭐냐 이 바보들아. 어찌 이리도 어리석으냐? 깨달음이 없느냐? 들을 귀가 없는 게냐?

이성을 가지고, 머리를 제대로 사용해서, 이치에 맞게 살아라 제발.
너희는 내가 가르친 바를 전파하여 세상에 이성의 등불을 밝혀서 온 세상의 사람들을 온갖 억압적인 맹신.맹종교리들과 사회.집단의 이데올로기들로 부터 자유케 하라.

이와 같이 예수는 시대적 정황을 고려할 때 놀라울 만큼 이성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21세기의 우리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다. 고대 유대의 광란적 종교사회에서 시대를 2천년은 족히 앞선 위대한 이성은 종교와 사회의 기득권층에게 위협이 되었다. 예수의 이성주의는 야만적으로 적대시 되었고, 예수는 처형되었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관심도 없이,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 뭐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식으로 뼈속까지 유대교에 물들은 광신적 제자.사도들의 눈에는 야훼의 계시로만 인식되었다. 고대인들 특히 중동인들은 모든 자연현상.역사적 사건.일상의 일들.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신의 의지와 연관시키는 의인적 신관에 물들어 있었다. 특히 바울 등은 자신의 유대교 신학의 지식으로 말마암아 예수를 완전히 오해하고 오도하였다. 예수는 인간을 억압하는 반이성적.반인간적이고 비합리적.배타적인 유대교와 야훼를 뒤엎고 새시대를 열고자 하였으나, 바울 등의 제자들은 예수를 붙잡아다가 도로 야훼의 제물로 유대교(구약)의 제단에 갖다 바쳤다. 인간의 무죄함과 자유함을 선언하고 신본주의를 폐기하고 이성주의.인본주의를 세우려한 예수의 뜻과 의지는 그들에 의해 완전히 묵살되고, 그들에 의해 인간들은 다시 야훼의 노예가 되고 자유없는 죄인들이 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명백히 예수를 오해.거역.배신한 행위이다.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고수하고 있는, 구약에다가 무리하게 접목한 비이성.반이성적 삼위일체 교리.도그마라는 것은 바울 등과 고대의 교부들의 작품에 불과하며, 예수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이데올로기와 예수의 가르침을 비교해 보면 그 둘은 서로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상반.모순됨을 알 수 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내밀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나만이 절대로 옳고, 다른 종교.이념.집단은 도륙을 내야 한다"는 구약의 유대교와는 정반대이다. 기독교라는 것은 죽은 예수를 들러리로 세운 유대바울교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사실상 유대교의 야훼와 유대인 바울의 가르침을 섬겨오고 있는 셈이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밤낮 외워대는 그 사도신경의 내용은 예수의 가르침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샤마니즘과 3차성전시대 유대교의 종말사상을 섞은 종교미신을 개정하여 300 년 지난후 주문화 한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소위 사도들과 그들의 전통을 계승한 어중이 떠중이 교부들에 의해 "예수는 토라 (구약) 대로 야훼의 계시.현현이고 아들이다, 야훼가 유대인들에게 한 약속을 지켜서 우리 대신 애꿋은 자기 아들 예수를 죽였다. 그러니 그걸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죄가 사해지고 구원받고 천국간다. 믿슘니까?" 로 둔갑하고, 그러자 천박.무식한 대중들에 의해 손쉽게 구원을 준다는 이 종교는 대중인기적 감동.멜로드라마화 되고 감성과 눈물을 촉매 삼아 마른 들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수 대중을 장악하고, 일단 권력화 되자, 교회는 가장 잔인하게 이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기만.탄압.유린.착취하고 대량고문.살해하는 악마의 화신이 되었다. 교회는 가는 곳 마다 개인.집단.국가간의 싸움을 일으키고 가정을 파괴하고 인류사상 가장 많은 인간들을 살해했다. 이 지독한 맹신적 교리는 거의 2천년간 한번도 수정.개정.갱신됨 없이 고스란히 오늘날 까지도 고수.사수되어 오고 있다. 사도시대의 유대교 버젼 2.1 이 오늘날의 기독교, 즉 유대교 버젼 2.5 정도로 되었다고 보면 된다.



한편, 예수의 가르침을 이성화.신비철학화한 영지주의 전통은 본래의 예수의 이성적 가르침을 비교적 잘 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인 삼위일체 종교미신에 의해 이단으로 내몰리고, 소수에 의해 근근히 전승되다가 얼마 안가서 사라져 버렸다. 이 와중에 예수의 참 모습은 실종되고 말았다.

예수가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해서 그의 유신론을 의미심장하게 생각하는가 ? 누구든 중국식당에 가면 무슨 음식을 주문하던 간에 일단 썬양파와 춘장은 무조건 나온다. 식초.간장도 테이블 위에 늘 놓여있다. 누군가 "봐라, 저사람은 썬양파를 오더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간장도 좋아하지 않는가" 라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가. 예수는 언어.문화.음식.거주지역 등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있어서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었다. 태어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주의 하에서 유대교 경전을 통달하며 자랐다. 그는 유신론, 야훼교를 선택한 바 없다. 그의 신관을 논하는데 있어시 정작 중요한 포인트는 그가 얼마나 탈야훼를 했느냐, 탈유대교적이었느냐, 인간중심적이었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오늘날로 보자면 자유롭고 이성적.합리적.과학적인 마인드에 뛰어난 통찰력.창의력과 인간이해.정의감을 가진 양심.용기있는 지성인.휴머니스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것을 철저히 과학적.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이성의 밝은 빛 속에 거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예수의 제자이고 사도인 것이다. "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바울 등의 삼위일체 도그마와 유대경전의 신화 등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르침 그 자체"를 배우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리하면 너희가 진리를 알게될 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맹신교리.도그마의 노예, 파리가 앞발 비비듯 늘 죄사함을 빌어야만 하는 부자유한 죄인의 상태로 부터의 해방)"

"빛이 과연 왔고 각사람을 비추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진리에 속하지 않은 맹신교 신자들은 로고스.이성.과학.진리의 빛을 오히려 두려워하고 피하며 미워한다. 그들은 어둠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끝-




동영상:

St. Matthew Passion

Concert
Neubeurer Chorgemeinschaft, Tolzer Sangerknaben, Bach Collegium Munchen
Conductor: Enoch zu Gutenberg

Running Time: 185 min
Recording Date: 1990
Menu languages: GB, D, F, SP
Picture Format: 4:3
Sound Format: PCM Stereo
Region Code: 2,5
Sel. No. 100 268 PAL

Johann Sebastian Bach's Passion oratorios are pinnacles of achievement in a long history of musical portrayals of Jesus of Nazareth's crucifixion. In these works the composer combines all the means at his disposal, drawing on cantata, oratorio and opera. Yet the active history of this Passion music did not really begin until a hundred years after the St. Matthew Passion's first performance: Felix Medelssohn Bartholdy's revival of this work in 1829 led to the rediscovery of Johann Sebastian Bach's music. This composition has long since come to occupy an assured place, beyond all boundaries of religious belief, as a supreme work of western art. On the present DVD, Enoch zu Guttenberg directs the Neubeuern choral society founded by him - an ensemble composed largely of amateurs, mostly inhabitants of the small town of Neubeuern. Under his direction the choir soon attained professional standards, winning an international reputation with press and public - as is clear from their numerous prizes and awards. Guttenberg's assertively individual style unites elements of historical performance techniques with a modern and energetic mode of ex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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