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음악의 연주법에서 표현된 민족적특성에 대하여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풍부한 민족적토양에 그 근본뿌리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백혜경
(사진: 서울신문 기사 발췌 2018.02.19 “윤이상 선생 유해 25일 고향 통영 품에”)
20세기 유럽의 현대음악계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윤이상음악의 지위와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의 음악에 차넘치는 민족성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작곡가 윤이상은 1989년 1월에 쓴 《나의 조국, 나의 음악》에서 《나의 음악은 력사적으로는 나의 조국(민족)의 모든 예술적, 철학적, 미학적전통에서 생겼고 사회적으로는 나의 조국의 불행한 운명과 민족, 민권, 질서의 파괴, 국가권력의 횡포에 자극을 받아 음악이 가져야 할 격조와 순도의 한계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의 보편적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한것이다.》라고 하였다.
작곡가자신의 글을 통하여서도 알수 있는바와 같이 윤이상음악은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풍부한 민족적토양에 그 근본뿌리를 두고있다.
윤이상음악에서 표현된 민족적특성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것은 음악작품의 창작동기로부터 시작하여 작품의 내용, 형식, 연주법 등에 이르기까지 드러나지 않는 곳이란 찾아볼수 없을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윤이상음악의 연주법들은 단순한 연주기술적표식으로 악보에 그려진것이 아니라 그의 심장에 차넘치는 민족정신의 형상적표출로서 민족적억양과 력도감에서 흘러나온 독창적인 연주표식이다.
연주법은 악기들의 고유한 특성에 따르는 표현법이다.
윤이상음악의 특징은 음진행에서 음의 선이 직선적인것이 아니라 곡선이라는데 있다.
서양음악의 음이 연필로 그은것과 같이 직선적울림이라면 윤이상음악의 음은 털붓으로 첫머리를 힘있게 눌렀다가 굴곡있게 그은것과 같이 곡선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음악의 억양적표현에 따른것이다.
그러면 윤이상음악의 연주법에서 민족적특성이 어떻게 표현되고있는가.
그것은 우선 우리 민족음악의 억양을 나타내는 롱음을 많이 살려쓰고있는데서 나타나고있다.
우리 민족음악의 억양적표현에서 롱음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다양하게 쓰이고있다.
민족음악연주에서 롱음은 깊은 롱음, 얕은 롱음, 깊고 얕은 롱음, 얕고 깊은 롱음 등으로 나누고있다.
윤이상음악에서는 음 하나에 대한 롱음표식을 ∪, ∩기호로 하고있다.
개별음에 대한 롱음은 소리울림의 물리적현상에 정서감을 부여함으로써 선률선을 구성하는 소리에 대한 예술적표현미를 가지게 한다.
윤이상음악에서 미분음적롱음은 한음에서 소리의 길이에 관계없이 한번 돌리는것이 특징이다. 즉 우로 돌리는 롱음(∩)은 소리의 높이기준에서 반음까지 사이에 미분음적으로 끌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것이며 아래로 돌리는 롱음(∪)은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가 올라오는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윤이상음악의 연주법에서 민족적특성은 일부 전통적인 연주법들을 민족적인 색채와 울림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중요하게 리용하고있는데서 나타나고있다.
그러한 연주법들은 윤이상의 기본연주법으로 되고있다.
지금까지 음악력사를 놓고 볼 때 연주기법상문제에서 그 어떠한 작곡가에게 한정된 고정적인 연주법은 없었다. 어느 한 작곡가 혹은 연주가에 의하여 새로운 연주기술이나 기법이 나타나면 그것은 인차 그 시대의 많은 작곡가들과 이후 시대의 음악창조에서 보편적으로 리용되여왔다.
그러나 윤이상은 자신의 작품창조에서 독특한 음악세계를 개척하는데 알맞는 법들을 자신의 기본연주법으로 쓰고있다.
그것은 글리싼도(훑기), 트릴(굴림소리), 피치카토(뜯기)라고 말할수 있다.
글리싼도, 트릴, 피치카토와 같은 연주법들은 이미 선행시대의 음악들에서 씌여져오던 주법들이다.
그런데 이 주법들은 선행음악들에서 어떠한 목적을 위해 부분적으로 혹은 특별한 경우에 쓰이는것으로 존재하여왔다.
그러나 윤이상은 그 주법들을 자신의 음악에서 기본연주법으로 모든 작품들에 일관시키고있다.
그러면 그의 음악에서 이러한 새로운 주법적특징이 나타나게 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새로운것을 지향하고 창조하려는 윤이상의 독창적인 창작에서 나왔다고 볼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소리의 크기, 높이를 중시하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소리의 색갈과 길이를 중시하는 동양음악적인 특성을 창작에 구사하려는데로부터 나왔다고 볼수 있다.
서양음악은 자체의 력사발전에서 소리높이의 미세한 차이에까지 신경을 쓰고 높이가 서로 다른 소리의 어울림을 생각하여 화음이라는 구조물을 산생시켰으며 그것을 리용하여왔다.
그러나 동양음악은 소리의 크기나 높이보다는 소리의 색갈과 길이를 중시하여왔고 음색을 통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방향에서 발전하여왔다.
실례로 판소리나 산조에서 그러한것을 많이 보여주고있다.
이렇게 음색과 길이를 중요시한 동양음악의 특성으로부터 음색과 길이를 변화시키는 연주법들인 피치카토, 트릴, 글리싼도가 전면적으로 쓰이게 되였던것이다.
이처럼 윤이상음악에서 글리싼도, 트릴, 피치카토들이 전면적으로 쓰이게 됨으로써 서유럽현대음악창작기법에 동양적인 색채를 미묘하게 융합시킬수 있는 실제적가능성을 주었고 구체적으로는 우리 민족음악의 우수성을 표현할수 있는 연주법들로 자기의 특징을 새롭게 하였다.
윤이상음악에서 많이 쓰이고있는 이러한 연주법들은 다양하게 변화되여 리용되고있다.
우선 글리싼도주법이 매우 풍부하게 씌여지고있다.
글리싼도는 임의의 음으로부터 다른 음에로의 미끌기진행을 하는 주법이다. 글리싼도는 음진행에서 굴곡있고 활력적인 특성을 나타내며 연주효과는 매우 색채적인 맛을 돋구고있다.
윤이상음악에서 글리싼도는 현, 목관, 금관악기들에서 다양하게 씌여지고있는데 그것들을 크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은것들이 있다. 그것은 글리싼도와 2중글리싼도, 짧은 글리싼도 등을 들수 있는데 이러한 글리싼도들은 음들에 활력과 굴곡을 주고 음들을 변화시켜 동양적인 미묘한 색채를 나타내는데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특히 목관과 금관악기들에서 내는 글리싼도의 효과는 서양관현악에서 들을수 없었던 새로운 음향세계를 펼쳐주고있는것으로 하여 더욱 특색이 있다.
구체적으로 윤이상의 교향시《광주여 영원히!》 제3악장에서 금관악기들의 글리싼도들은 우리 민족악기들의 롱음을 방불케 하면서 남조선인민들과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의 울분에 찬 감정을 독특한 음향을 통하여 진하고 선명하게 보여주고있다.
또한 윤이상작품들속에서는 트릴이 매우 풍부하게 사용되고있다.
트릴은 서로 다른 높이의 빠른 엇바뀜소리를 얻기 위한 주법이다.
윤이상작품에서 트릴은 연주법의 중요한 일면을 차지하면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리용되여 작품의 형상세계를 뚜렷이 살려내는데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트릴과 2중트릴, 반음트릴이 악상기호들과 결합되여 점차 크게 혹은 점차 작게 등의 형태를 띠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속에서 소리의 색채를 중시하고 소리에 활력을 부여하여 자기 식의 새롭고 독특한 음향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윤이상의 진지한 창조적노력을 엿볼수 있다.
윤이상음악에서는 또한 피치카토주법도 여러가지로 풍부하게 씌여지고있다.
피치카토는 찰현악기에서 손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내는 연주법이다. 윤이상음악에서 피치카토는 여러가지 형태로 쓰이는데 여기에는 일반적인 피치카토, 음을 정확히 짚지 않고 줄에 왼손을 대고 뜯는 피치카토, 바르또크피치카토, 채로 튕기는 피치카토 등이 있다.
특히 채로 튕기는 피치카토는 거문고나 가야금소리를 련상케 하는 새롭고 독특한 색갈을 창조하고있다.
다음으로 윤이상음악에서 나타나고있는 연주법의 민족적인 특성은 서로 다른 연주법들을 결합하여 민족적인 울림과 색채를 창조하고있는데서 표현되고있다.
첫째로 그것은 트릴과 글리싼도의 결합이다.
주로 현악기들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 주법은 트릴을 하면서 글리싼도까지 함께 연주하여 음의 성격을 매우 기묘하고 특색있는것으로 만들어놓는다.
둘째로 피치카토와 글리싼도의 결합이다.
피치카토를 연주하면서 글리싼도를 함께 연주하는 이 주법은 마치도 거문고에서 롱현을 하는듯 한 인상을 준다.
이처럼 윤이상음악에서 나타나고있는 연주법들은 우리 민족음악에서 표현되고있는 고유한 음색과 울림을 창조하여 작품에 민족적인 색채와 향취를 풍기게 하려는 작곡가의 애국애족의 창작열의와 고심어린 사색이 가져온 고귀한 산물이다.
이것은 서양음악형식에 민족적인 정서를 담는데서 실제적인 표현적가능성을 보여준 또 하나의 훌륭한 창조로 된다.
독특한 연주법으로 작품에 민족적인 정서를 훌륭히 표현한 대표작품들로서는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관현악 《례악》, 《무악》, 첼로를 위한 협주곡, 하프와 관현악을 위한 곡 《공후》, 오보에독주곡《피리》등을 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