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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정신세계 Compos Mentis

이원택 저

2014-11-25

시인의 정신세계 Compos Mentis

이원택 (재미 수필가)



시는 깡패 문학이다. 시인치고 무법자 아닌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 시인은 문법을 무시한다. 시는 엉뚱하다. 말이 되는 글은 시가 아니다. 시인은 삐딱하다. 시인치고 정신이 온전한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 시인은 욕심쟁이다. 항상 현실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송화(松花) 가루 꽃보라 지는/ 뿌우연 산협(山峽)/ 철그른 취나물과 고사릴 꺾는/ 할매와 손주딸은 개풀어졌다./ 할머이/ 엄니는 하마 쇠자라길 가지고 왔을까?/ 풋고사릴 지근거리는/ 퍼어런 잇빨이 징상스러운 산협(山峽)에/ 뻑국 뻑국 뻐억 뻑국」 (신석정의 <산중문답 4>)

말이 되는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도 깊은 산중에 고사리를 뜯으러간 할매와 손주딸이 소근대는 대화가 뻐꾸기의 메아리로 들려오는 정경이 눈에 선하다. 이 시는 이태백의 같은 제목에서 영감을 잡았는지는 모르나 한국의 시가 정형시에서 자유시로 탈바꿈 할 때 쓰여진 것으로 형식에 있어서 산문적 자유를 얻었으나 내용은 운문적 특징이 많이 살아있다. 시각적으로는 ‘꽃보라 지는’ ‘뿌우연’ ‘개풀어졌다’ ‘퍼어런 잇빨’ ‘징상스러운’ 등의 의태법을 썼고 청각적으로는 ‘할머이-’ ‘하마’ ‘지근거리는’ ‘뻑국 뻑국 뻐억 뻑국’의 의성법을 사용해서 형식과 내용, 시각과 청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만약 이글을 초등학교 문법시간에 제출했으면 빵점을 면치 못했을 터이다. ‘눈보라 치는,’ ‘철지난’ 은 있어도 ‘꽃보라 지는,’ ‘철그른’ 은 없는 말이고 ‘뿌우연’ 이나 ‘퍼어런’ 의 중간어는 쓸데없는 말이며 ‘개풀어졌다’ 나 ‘쇠자라기’ 는 분명 사투리이다. ‘지근거리는’ 이나 ‘징상 스러운’ 이란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

어린 계집애가 늦은 봄날 할매와 엄마와 산 속으로 나물을 뜯으러 갔는데 산이 깊어지자 그 꼬맹이는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남자 없이 여자 세 명이 만약 승냥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엄마가 ‘쇠자라기 (쇠꼬챙이?)’를 챙겨왔나 걱정이 되었다. 시퍼런 이빨을 드러내며 어린 처녀를 못살게 구는 뭇 사내들로부터 저를 보호해 줄 수려한 왕자님은 어디 계실까.

물론 신석정씨가 생전에 쇠자라기에 대해서 언급을 했겠으나 보통 독자들은 앞뒤 문장을 보고 제멋대로 해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작가의 창작노트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전을 찾아가며 시를 감상하는 독자는 없다. 시는 구상에다가 논리를 뛰어넘는 말의 유희이므로 작가가 일부러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는데 이를 시인의 특권 (poetic licence) 이라 한다. 시인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 특권을 이용해서 연막을 치므로 시를 통해 시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일은 어쩌면 소경이 코끼리 만지는 것보다 더 오리무중 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응큼하지는 않지만 엉큼하다. 이만하면 왜 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시는 “설명이 아니라 표현이다,” 시를 “분석하지 말고 느끼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는가.

‘개풀어졌다’는 삼복더위에 축 쳐진 개 불알 같이 ‘힘이 빠졌다’로 짐작 했으나 ‘쇠자라기’란 말은 평생 처음 듣는 말이었다. ‘쇠’는 ‘쇠붙이,’ ‘자라기’는 ‘끝부분’을 나타내므로 아마도 끝에 쇠가 붙은 막대기로 검부러기를 헤치거나 뱀 등을 쫓는 무기 일 것 이라고 단정을 했는데 시어 사전을 찾아보니 ‘개풀어 졌다’는 눈에 총기가 빠졌다는 뜻으로 배가고파 허기진 상태와 비슷하게 맞았는데 ‘쇠자라기’는 경기도 지방에서 쓰는 ‘술 찌꺼미’(재강:술찌끼)와 같이 쌀로 술을 빚은 후에 남은 찌꺼기를 말하는 전라도 사투리란다.

「퍼어런 잇빨이 징상스럽게 풋 고사릴 지근거린다.」에서 주격(主格)이 무엇인가도 혼동이 되었다. ‘풋 고사릴 지근거리는’으로 봐서 뻐꾸기가 주체인 것도 같았으나 뻐꾸기의 부리는 노랑색이며 그들은 초식동물이 아니라 잇빨 보다는 혀를 사용해서 벌레를 잡아먹는 육식 동물이다. ‘징상스러운’이란 표현에서 뱀도 생각해 보았으나 뱀은 퍼어런 잇빨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풋 고사릴 지근거리지도 않는다. 이 글이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제출되었다면 종아리를 맞아도 쌀 것이다. 시인이 구태어 상형문자 산협(山峽)을 쓴 것을 보니 이 귀절의 주체는 음침한 산골짜기 이고 시퍼런 협곡에서 공룡같은 잇빨로 여린 고사리를 추근댄다는 것은 역시 거대한 짐승(대자연)의 배고픔을 그린 것이리라.

따라서 이 시는 송화가루로 떡을 만들고 산나물로 반찬을 삼고 술 찌꺼기로 배를 채우던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한 시골소녀의 배고픔을 뻐꾸기 울음소리로 달래보는 정경을 그린 것이다. ‘쇠자라기’란 한마디로 시의 해석이 180도 달라졌다. 시인은 식욕을 염두에 뒀는데 나는 성욕을 생각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정신과 의사는 이 시를 어린 계집아이가 성에 눈을 뜰 때의 호기심, 불안감, 기대감을 각각 ‘송화가루,’ ‘쇠자라기,’ ‘뻐꾸기’를 등장시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프로이드적 해석을 했으나 시인은 송화가루, 쇠자라기, 뻐꾸기를 각각 ‘결핍’, ‘갈구’, ‘염원’으로 승화시켜 애처로운 현실세계를 탈피하려 한 것이다.

모든 시인이 전세 낸 몽상가(chartered dreamer)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보니 시인만큼 현실주의자도 없다. 조금 양보해서 시인을 전세 낸 낭만가(chartered romantist)라고 해야 할까보다. 시인과 정신과 의사, 과연 누가 더 dreamer이고 누가 더 romantist 인가. 누가 더 엉터리이고 누가 더 성한가.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미쳤다고 진단하면 미친 것이다. 이를 정신과 의사의 특권 (psychiatric licence) 이라고 한다.

「물살 흐르는/ 졸음결에/ 하얀히 삭아서/ 스며 오른 목숨발/ 내 색시는 하얀넋/ 천만년 달밤/이슬 하늘 찬 달빛에/높이 운다./」
서경(敍景)시의 대표주자 박목월의 <옥피리>이다.

전체적으로는 ‘태고적 옥피리 소리가 흰 달빛 속에 녹아서 승천한 내각시의 넋이 되어 창공에서 슬피운다.’라는 내용이나 부분적으로 따지면 단어 간에 연관이 별로 없는 연상이완 (loose association:「물살-졸음-목숨발, 내색시-하얀넋-달밤, 이슬-달빛-울음」), 이질의 단어들이 모인 말 비빔 (word saled:「스미다-오르다-목숨발, 이슬-하늘-달빛」), 생각이 도약을 하는 사고이탈 (tangentiality:「흐르다-졸다-운다, 삭다-스미다-오르다, 하얀넋-천만년-찬달빛」), 아리끼리한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신어조작 (neologism:졸음결, 목숨발, 하얀넋, 이슬하늘)등등, 정신분열병의 전형적인 증상인 사고의 와해 (diorganized thoughts)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목월 선생은 아주 정신이 온전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내면에 출렁대는 혼돈을 오랫동안 곰삭여서 <옥피리>란 한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지식을 먹고 살고 시인은 지혜를 먹고 산다. 어떻게 보면 이 시를 선시(禪詩)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이런 시를 쓸 수 없다. ~ “내 입술이 빨갛다고 트집 잡는 느그들이 다 빨갱이 들이다.”

「저 입술을 깨물며 빛나는 별/ 새벽거리를 저미는 저 별/ 녹아 마음에 스미다가/ 파르르 떨리면/ 나는 이미 감옥을 한 채 삼켰구나/ 유일한 문밖인 저 별」 (장석남의 <별의 감옥>)

스무 두어 살 나이에 무언가 세상에 혼이 나서 제주도로 내려가 한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무언가를 갈구했으나 아무런 해답을 못 찾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고 쓴 시란다.

시인은 눈물에 젖어 바라본 별빛이 마치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 같이 보였고 그 불빛이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듯 다가왔을 때 파르르 떨면서 현실의 ‘감옥’을 꿀꺽 삼켜 버렸다. ‘유일한 문밖인 저 별’은 시를 향한 길로서 절망의 언덕에서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정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그때 그 일이 무슨 일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문맥으로 보아 절실히 돈이 필요했거나 실연을 당했거나 하여간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던 모양이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고 죄책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쳐다본 별은 더 높아 보이기 마련이고 암흑의 세계에서 쳐다보면 더욱 더 빛나 보일 것이다. 괴로움과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든 시인은 자신을 꽁꽁 묶어두는 현실세계를 뛰쳐나오려고(革罷:혁파:coming out)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틀 무렵 한줄기 서광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를 위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아바타처럼. 결핍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결핍은 박탈감이다.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자유롭고 평등할 권리도 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과 사회는 그리 녹록치 않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인간은 목석이 아니다. 시인은 더 그렇다. 삶과 욕망은 일심동체다. 목이 마를수록 물을 갈구한다. 갈증에 시달리다 찔끔찔끔 목을 축일 수는 없다. 벌컥벌컥 삼켜야 한다. 박탈이 심할수록 반항하게 마련이다. 반항은 기존의 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튀어나오는 것이다. 탈(奪)이 탈(脫)을 낳는다. 평범에서 비범으로의 일탈(逸脫)이다. 해탈(解脫)이면 더 좋다.

명치시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던 나쓰메 소세키는 “이치로 움직이면 모가 나고 감정에 치우치면 흘러버리고 고집을 세우면 막혀버린다. 여하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거기에서 시가 생기고 그림이 그려진다.” 라고 했다.

창조란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결핍과 반항과 일탈이 없이 창조력이 나올 리 없다. 시인은 반항아 이어야 한다. 감옥을 삼켜 버려야 한다. 시인치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한번 나아보라 그래. 불안감을 시로 승화 시켜서 그렇지 불안감과 창조력은 정비례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본능(id) 이성(ego) 이상(super ego)의 세층으로 나눠서 각 계층간에 마찰이 올 때 불안해 진다고 했다. 나는 멋진 연애를 하고 싶은데 신체적, 경제적 여건도 그렇지만 십계명에도 위반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 (불만과 사촌지간)한 마음을 술로서 달래고 있다. 조만간 알콜성 치매가 올 것 같아 시 쓰기를 시작했으나 시는 멀고 술은 가깝다.

N.Y. Times에서 30년 간 직업별 유명인사 1,004명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연 과학자 28%, 직업군인 30%, 비구상작가 72%, 화가 73%에 비해 시인의 평생 정신병 유병률이 87%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Baudlaire, Byron, Eliot, Keats, Shelly, Blake 등도 다 ‘정신병적 소질’이 있던 시인들이다. 세익스피어는 광기와 창조력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했다. 외눈박이 왕국에서는 두 눈 가진 자가 이상하게 보인다. 시인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시인은 앞서가는 사람들이다.

시인의 생명은 정서와 상상력이다. 시인은 다정다감하고 박학다식해야 한다. 정서는 대뇌 심층부에 자리 잡고 있는 변연계에 저장되어 있고 상상력은 전방전두피질에서 우러나온다. 그리고 이 기관들이 신경다발로 연결되어 있다. 정감이 풍부한 사람들은 조울증이나 우울증, 불안증에 잘 걸리고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강박 신경증, 정신 분열증 이나 망상증에 잘 걸린다. 이때 중요한 것이 감성과 지성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시에서도 너무 퇴폐적이거나, 너무 아우성을 치거나, 너무 난해한 시를 쓰면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말도 된다.

직업별 평균 수명은 시인이 제일 짧고 자살률도 만만치 않다. 김소월, 이상, 함형수, 김관식 등등, 천재 시인은 모두 요절하고 둔재 시인만 오래 산다고 한다. 그러나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정신병에 걸리더라도 좀 튀는 시를 쓰고 싶어 할 것이다. 비범해져야 하니까, 독창적이어야 하니까. 의사가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박목월씨가 상식이 없어서 ‘물살 흐르는 졸음결에’를 ‘물결 흐르는 졸음살에’로 쓰지 않았겠는가, 신석정씨가 누가 말린다고 ‘쇠자라기’를 ‘술지게미’로 고쳐 쓰겠는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우선 시부터 잘 써놓고 치료는 나중에 받아도 된다. 진짜 시선(詩仙)이 되면 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 시가 시인을 치료하기 때문에-.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한하운의 <보리피리>)
문둥이라는 천형으로 숱한 한을 지고 어린 시절의 고향산천과 서로 비비고 사는 사람 냄새가 그리워 산 넘고 물 건너 끝없는 길을 애절한 보리피리로 달래며 방랑하는 시인의 슬픔을 노래한 시이다.

인간은 우울증으로 인한 허탈감과 자존심의 상실 등을 극복하고 자신이 자신의 세계를 통제 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창작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해 보려는 일종의 자기 치료의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한다. 시(poetry)는 창작한다는 뜻이다.

정신과 치료 항목 중에 미술치유, 음악치유, 연극치유, 명상치유, 산림치유, 심지어는 애완동물 치유라는 것도 있는데 ‘문학치유’가 빠진 것은 정신과 의사가 문학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시인들에게 밥그릇을 빼앗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시(poem)이고 언어는 시인이 지어내는 창작(poetry)이므로 말로는 정신과 의사가 시인을 따라갈 수 없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혼돈은 통합의 어머니이다. Compos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적재적소에 재배치 한다는 뜻이다. 창조의 목적은 발전에 있다. 세상의 이치는 정, 반, 합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생태계는 자정(自淨) 작용을 통해 평형을 유지한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예술의 공통된 본질은 혼돈의 질서화요 시 문학의 특질은 복잡한 자상의 단순화” 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정신치료도 의사와 환자 간에 소위 전이(transference)와 반전이(counter transfe- rence)라는 혼돈을 일으켜서 궁극적으로 이들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마음의 불순물은 예술로 정화시켜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솔 벨로우(Saul Bellow)는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벌써 자살 했을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정신병자를 ‘non compos mentis:마음이 온전하지 못한 자’라 했으나 자세히 보면 마음이 불순한 자들이 정신과 의사들이고 시인들이야 말로 평온한 마음(compos mentis)의 소유자들이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자가 정신과를 전공할 리가 없고 정신과를 하다보면 이만 저만 헷갈리는 게 아니다. 내가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려는 이유도 혼란한 마음을 다소나마 다스려 보자 함이다.

우리는 개를 보고 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나 개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가 반가워서 개가 꼬리를 치는 줄 알고 개는 자기가 지겨워서 사람이 시를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개는 세엑스가 하고 싶을 때 꼬리를 치며 인간은 외롭고 괴로울 때 시를 쓰는 것이 아닌가(?) 일개 정신과 의사가 지고한 지성인인 시인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일은 마치 공산명월에 개짓는 헛소리 인지도 모른다.



* 이원택 저 "메타 라이팅".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사진: 이원택 출판기념회 - 심흥근 기자 촬영

연락처).
이원택 (서울대학교 의대 71년 졸, 정신과 전문의)
병원주소: Memorial Counseling Associates/Memorial Psychiatric Health services:
4525 Atherton Street, Long Beach, CA. 90815
전화: (562) 961-0155 Office
www.mcapsy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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