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로 데려가겠오”
소련의 국민가수였던 말갈족의 후예
글: 강인욱 (경희대학교 교수 - 사학과)
나나이, 혁철족, 골디..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말갈과 여진족의 후예는 지금 만주 북부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산다. 배우 윤문식 선생님의 도플갱어같은 이 분은 나나이족 출신으로 1970~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Kola Beldy라는 분이다. '툰드라로 데려가겠오'라는 노래는 요즘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1929년생인 이 나나이족 가수의 삶은 단순한 가수 이상의 전형적인 '소비에트'적인 인생이었다. 하바로프스크 근처 나나이족 자치주의 작은 마을에서 사냥꾼의 아들로 태었다.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그렇듯이 스탈린과 2차대전의 시간을 혹독하게 겪은 희생자였다. 스탈린 시절에 부모를 일찍 잃고 그가 태어나서 성인 '벨지'라는 이름의 유래였던 마을 '벨지'도 폐촌되었다. 그 충격으로 심하게 말을 더듬게 되었다. 다행히 김나지움(전문학교)에서 의사가 말더듬을 고치는 방법으로 성악을 권유했다. 어쨌든 평생 말더듬을 고치진 못했지만(그래서 그런지 콜라 벨디의 인터뷰는 거의 남아있는 영상이 없다). 대신에 그의 빼어난 벨칸토에 가까운 미성은 소련을 대표하는 국민가수가 되었다. 나나이족뿐 아니라 북극권의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노래를 부르는 그는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우상이었다. (물론, 이런 성공에는 소수민족중 재능있는 사람들을 본보기로 우대하던 소련의 정책적인 배려도 무시할 수 없었다)
20대후반에 모스크바로 와서 30여년간 승승장구하던 그는 두번째 부인이 죽고 난 직후 60세가 되어서 갑자기 모스크바를 버리고 고향인 하바롭스크로 돌아갔다. 원래 시골 출신인 그는 큰 도시에서 살면서 점차 공황장애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나이족인 고향 출신의 30세 어린 부인도 만나서 딸도 두었다. (아이가 없었던 그에게 유일한 혈육이다)
원래 도서관 사서였던 부인과 행복한 생활도 잠시 그는 3년뒤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여전히 그는 나나이족, 아니 북극권을 대표하는 가수로 남아있다. 3년반을 살았던 그의 마지막 부인 올가는 지금도 하바롭스크에서 콜라 벨디의 유산을 지키며 그의 기념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평소에도 그는 자신을 극동의 유명한 인물 '데르수 우잘라'의 후손을 자청했다. 오죽하면 1970년대에 '데르수 우잘라'를 찍는다는 소문을 듣고 그 유명한 스타가 직접 스튜디오를 찾아와서 자신이 데르수 우잘라의 손자라며 그 역을 달라고 떼를 썼다.
이에 감독이 "아니 당신 그렇게 말을 더듬는데 어떻게 대사를 할려고??"하니 콜라 벨디 왈 "누가 대사를 한다고 했소, 난 노래만 하면 되지!!"
생각해보니 '데르수 우잘라'가 뮤지컬이었으면 콜라 벨디가 나오는 환상의 배역도 가능했을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 영화에는 결국 극동이 아닌 남부 시베리아 투바출신의 막심 문주크가 했다.
Kola Beldy
사족 1) 참~~ 중국의 나나이족인 혁철족이 나은 '위대한' 가수도 있다. 슈퍼주니어라는 그룹의 중국인 멤버 한경이 혁철족이다.
사족 2) 콜라 벨디는 한국과도 관련이 있다. 2차대전 말기에 콜라-벨디는 2년이나 나이를 속이고 소-일 전쟁에 해군으로 참전했다가 북한의 전쟁에도 참여했다. 당시 16세에 불과했었다.
사족 3) 콜라 벨디의 노래 중에 나나이족의 신화를 노래한 민요인 '하니나 라미나'라는 나나이어 노래는 신비롭기 까지하다. (인터넷상에는 소련시절의 집단 체조 장면이나 Soul Train의 Meme으로 등록될 정도이다..) 하니나 라니나는 태양을 상징하는 북을 치면서 풍어를 기원하는 대표적인 민요다. 사냥, 어로 등을 하며 힘든 겨울을 지냈던 말갈족들의 기상이 느껴진다.
저자: 강인욱 교수
참고영상:
러시아 국민가요.. '툰드라로 데려가겠소'
https://youtu.be/NrBtOTstM-4
https://youtu.be/gFexrbyS6W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