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성 LA문화예술]
모타운 레코드 창립자 ‘베리 고디’ Berry Gordy 광장명판식 - LA시의회에서 추대
November 26, 2019
[유정신보=LA] 심흥근 기자
-모타운 레이블, 흑인 아메리칸 음악을 긍정적으로 홍보...흑인음악 미 주류시장서 동반성장에 공헌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3년간 복무한 이력도
-고교를 중퇴하고 복서를 꿈꾸다...자동차 제조업 노동자로 근면
-영향력있는 소울 뮤직(Soul Music)음반 담당하며 성공
Berry Gordy III (Motown Records Founder) Square at Sunset Blvd by the Los Angeles City Council
“전설적인 미국 음악 레코드 회사 Motown 모타운은 제 인생의 주마등 같은 회상의 사운드트랙 인것 같습니다. 베리 고디 3세 (Berry Gordy III)씨가 제가 어려서 살던 고향에서 약 100 마일 떨어진 곳에 Motown Records를 설립했을 때 저는 8살이었습니다. LA시의회에서 선셋 과 아길 교차로 지점에서 (Sunset & Argyle-Berry Gordy Square) 훌륭한 인물의 그 공적을 기리는 명판을 정했을 때 스모키 로빈슨 및 스티비 원더 (Smokey Robinson, Stevie Wonder) 와 같은 음악적 영웅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이었습니다.”
(허브 웻슨 LA시의회 의장 Herb J. Wesson, Jr.)
베리 고디 (우측 2번째 가운데 선그라스 착용, 좌측 2번째 허브 웻슨 LA시의회 의장)
왼쪽부터, 미치 오페럴 LA시의원; 베리 고디 모타운 창업자; 허브 웻슨 LA시의장,
-모타운 레코드사 창립자 ‘베리 고디’는 누구인가, 왜 LA시의회에서 그의 공적을 기려 교차로에 명판을 세웠나?
1929년생인 Berry Gordy Jnr씨의 삶은 놀랍다. 소설책 몇권 나올만큼 파란만장하다. 흑인으로서 고교를 중퇴하고 복서를 꿈꿨고, 1950-1953 미육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후, 소규모 자영업 장똘뱅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자금을 충당키 위해 자동차 제작공장에 노동자로 일하며 사업가로서 꿈을 키운다. 여건이 마련되자 친구의 조언을 듣고 “모타운” 이라는 음반 기획사를 창업하며 50년 반세기 동안 수많은 스타를 발굴해 가장 영향력있는 소울 뮤직 (Soul Music)음반 제작을 담당하며 성공한다.
(가운데, 허브 웻슨 시의장; 오른쪽 중간, 스모키 로빈슨; 스티비 원더)
베리 고디가 창업한 음반 기획사 모타운 레코드는 (Motown Records)미국의 1960년대 음악 사운드의 방향을 예고 했다. 마치 융탄자에서 보여지는 다채로운 시각적 감각을 소리 예술로 끌어올린양, 수많은 히트 음반 레코드를 만들어낸다.
발기 처음부터 모타운 레코드사는 50년대 후반, 당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흑인 소울인 블랙음악의 홍보와 제작을 목적으로 한 음반제작 기획사 레이블로 시작했다. 베리 고디는 인종과 각 민족의 제각각 색갈을 템플릿 모형을 재구성하여 그 과정에서 고전적인 동시대의 대중음악 작품을 만들어냈다.
1959년에 설립된 모타운 레이블은 블랙 흑인 아메리칸(Music of Black America) 음악을 긍정적으로 홍보했을뿐만 아니라 흑인음악이 미 주류시장에서도 동반성장에 공헌한 의의를 갖는다.
‘Motown'은 자동차 엔진 동력인 모터와 'Motor'와 로컬 지역사회 타운 'Town'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 된 것으로, 이 기획사 의 출생의 기원 레이블이다. 즉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 지역을 기반으로 출발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시건주 디트로이트는 도시의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았다. 오대호 주변 (당시 공업용 용수가 용이하고, 수출보다는 내수용 중심의 철강업계 제철소에서 나오는 무거운 화물을 오대호 공장 의 여러지역으로 이동이 편한 기업환경)은 기계 중공업이 발달된 포드 자동차 회사가 들어선 관계로 이에 파생 된 자동차 공업도시로 유명했다.
제39대 미합중국 지미 카터 대통령
베리 고디의 부모님들
His parents were Berry Gordy II (a.k.a. Barry Gordy, Sr.) and Bertha Fuller Gordy, who had relocated to Detroit from Milledgeville, Georgia in 1922.
베리 고디 주니어의 부모는 1922년 조지아주에서 디트로이트로 이주했다. 베리 고디 1세 즉, 베리 고디의 조부는 백인 농부 제임스 토마스 고디(James Thomas Gordy)아들이었고, 할머니는 조지아에서 일하던 흑인여성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 James Earl Carter, Jr.의 어머니 (베씨 릴리안 고디 카터)의 삼촌 Berry Gordy Sr. 로서 그의 손자인 Berry Gordy Jnr와 지미 카터 대통령이 촌수로 사촌 관계이다.
카터 대통령의 어머니 Bessie Lillian Gordy Carter (August 15, 1898 – October 30, 1983)는 친부 James Jackson Gordy의 동생인 삼촌 Berry Gordy Sr. 의 조카다. Motown Records의 설립자 Berry Gordy Jr.의 할아버지가 Berry Gordy Sr. 이다. (아래 그림 참조)
베리 고디의 아버지는 당시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흑인 노동자들도 도시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고 듣고 디트로이트로 이사했다. 베리의 형제들은 디트로이트에서 흑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존경 받았지만 베리는 고등학교 11학년 때 중퇴한다. 사각의 링 프로복서를 꿈꾸며 그가 21세가 되던 1950년까지 추구 한 직업이었다. 한때 베리는 1948년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12번 방어해낸 조 루이스와 같은 복싱 체육 법인에 소속 되었었다. (조 루이스는 전설적인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에 패하고 은퇴했다)
Berry appeared on the same bill as Joe Louis in 1948.
Berry Gordy Jnr., (born 28th November 1929, Detroit, Michigan, U.S.A.)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미육군으로 입대 해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1953년까지 복무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그는 군에서 제대해 집으로 돌아와 텔마 콜멘(Thelma Coleman) 으로 불리운 여인과 결혼한다.
이 시점에서 그는 음악작곡, 노래작사, 및 재즈뮤직 전문 스토어 인 3-D Record Mart를 열고 사업을 시작한다.
그는 나중에 매장을 접고, 돈을 모으기 위해 링컨-머큐리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다시 노동일을 시작했다. 그런 다음 클럽의 소유자를 만나 가수 재키 윌슨 Jackie Wilson을 만났다. Jackie Wilson은 'Lonely Teardrops'를 포함하여 향후 2년 동안 베리 고디와 공동으로 작곡한 4곡을 더 녹음하면서 성공을 거둔다.
베리 고디는 1957년 작곡을 통해 밴드 ‘더 미라클’ The Miracles (원래는, 마타도어스 밴드 The Matadors)를 발견하고 잠재적인 레코딩 아티스트 명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9 년에 베리 고디는 그의 가족으로부터 800 달러를 빌려서 전설적인 레이블 “탬라 레코드” (Tamla Records)의 첫 번째 화신인, 마브 존슨의 첫 번째 히트작 인 'Come To Me'를 탄생 시킨다. 이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 (The United Artists Records)는 베리와 함께 공동 제작하고 공동으로 작곡 한 'You Got What It Takes'를 포함한 아티스트의 후속 레코드를 공개하며 주목을 받는다.
음악적 영웅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은 베리 고디에게 1959년 12월 음반제작 기획사 모타운 Motown을 만들어야한다고 제안한다. Berry Gordy가 디트로이트에서 창립한 모타운 레코드사는 당시 이 지역에서 폭동등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등이 지역의 사업이 위축되는 분위기 때문에 결국 1972년에 베리는 음반 기획사 모든 부서를 서부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여 디트로이트 힛츠빌 (Hitsville)스튜디오를 폐쇄한다.
베리와 스모키
한편, 80년대 90년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미국 음악인 흑인가수 ‘록웰’(Rockwell - a.k.a. 무대 이름) 모타운 창립자 Berry Gordy Jnr의 아들이다. Rockwell의 풀 네임은 Kennedy William Gordy (1964년 3월 15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남). Rockwell은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Motown 레이블에 소속되어 1983년 'Somebody 's Watching Me'라는 제목으로 가장 잘 알려진 히트 곡을 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특히 록웰의 아주슬픈 서정적멜로디와 소울리듬이 아름답게 균형을 맞춘 “나이프”(Knife)는 한국인들의 정서적 심성에 어필하여 지금도 애청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64년생 록웰 (Kennedy William Gordy)의 풀 네임, “케네디 윌리엄 고디”에서 짙은 부성애가 느껴진다. 그의 아버지 베리 고디씨가 존경하는 정치인 케네디 대통령과 창의적인 뮤지션 친구인 스모키 로빈슨을 닮으라 축원하며 지어준 합성 이름이라는 전언이다. (John F. Kennedy and William "Smokey" Robinson.)
록웰 Kennedy William Gordy
대체로, 미국사회에서 소수인 흑인들의 삶이 지금도 얼마나 고단한가. 흑인 사업가 베리 고디의 인생사를 간략히 정리해 봤다. 그를 통해서 미국의 현대사를, 미국 문화의 무형적 측면들과 유형적 도시성장과 퇴보 등 변화의 모습도 보게된다. 또한 우리 한국인, 혹은 한인동포의 입장에선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가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인한 지정학적(예, 군사적 요인 - 주한미군 주둔)요인이 가장 크지만 상대적 수출입교역국인 한국과 미국의 경제적 요인도 매우 중요한것이고, 더불어문화적, 심리 정서적 요인도 적지 않음을 보게된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사회를 이해 해야 하는데 있어서 한 인물, (국가가 아닌, 한 인물 개인을 분석) 사람이 자라나서 성장해 뜻한바에 도전하고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성취해 일구는 일련의 과정을 간략히 들여다 보는것도 가치가 있다하겠다.
참고) 족보 그래픽
https://famouskin.com/famous-kin-chart.php?name=12937+jimmy+carter&kin=35588+berry+gordy&via=27904+james+thomas+gordy.